이렇게 말을 하면 맹랑한 이야기라고 헛웃음을 칠까? 어디 케케묵은 말을 하냐고 낡아빠지고 남루한 말을 나보고 믿으라하는 것이냐? 부엉이 같은 눈으로 쬐려보는 당신의 눈이 무섭다. 그리고 내가 하려는 말에 대한 당신이 하려는 대꾸는 지극히 타당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낚시꾼이다. 그러기에 가능하면 앉았던 자리에 티 나지 않게 원상복귀를 하려 애쓰고 떡밥도 가능하면 작게 쓰려하니 콩알 낚시를 즐겨한다. 수질오염을 줄이려 머리도 빨래비누로 감는다. 공중목욕탕을 드나 들 때도 당당하게 빨래비누를 들고 들어갔다. 청년시절까지. 머리부터 몸까지 빨래비누로 했다. 어쩌면 내 몸 자체가 빨래 감 일수도. 웃지 마시라! 진짜다. 찌든 때 얼룩 제거에는 무궁화 세탁비누가 최고! 당신도 한 번 나처럼 해 보길. 하긴 당신은 깨끗하니까 뭐.. 씻어 낼 흠이 있기나 할까 ,,,...핫핫핫

 

세상에 영원한 번영은 없다. 피어난 것은 길고 짧음의 문제이지 반드시 지는 때가 있다. 나의 빨래비누 시대도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남 눈치 안보고 산다. 호언(豪言)하고 살았는데 빨래비누를 들고 거품을 내는 모습에 홀키며 보는 눈초리가 별로 탐탁치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보편적이 않은 나의 행태가 비정상이 맞다. 그래서 어느 순간 빨래비누를 쥐었던 내 손에 세숫비누가 잡혀 있었던 것이다. 일단 세숫비누는 거품의 신세계였다. 그리고 향(香)이 일품이었다. 조금만 문질러도 거품이 풍성하게 일었고 향기는 몸에서 꽤나 오래 붙어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러면서 샴푸는 수질오염 공공의 적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사실 비누를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친구 희신이 때문이었다. 녀석의 속살은 검은데 유독 얼굴은 하얀 것. 그래서 물었더니 아기들이 쓰는 비누가 있다는 것이다. 우윳빛처럼 뽀얀 비누. 그 말에 사람이 훅 갔다. 남자가 귀가 얇으면 산들바람에도 10리를 날아간다. 마트로 가서 아기비누를 샀다. 카운터 아가씨가 물었다. 집에 아기가 있나 봐요~ ㅠㅠㅠ 직원 말에 대충 얼버무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비누로 문지르고 또 비벼대었다. “속 살 검은 희신이가 얼굴 뽀샤시 해진 다잖여~그렇게 맹꽁이처럼 지금도 살고 있다.

 

 

많이 벼르고 벼르던 것을 오늘 감행하여 보고자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해설?을 하면 픽~하고 실없이 웃어 버릴 테지만 때로는 당신에게 중대한 것이 내게는 경(輕)한 것도 있을 것이니 그냥 비긴 셈치고 들어 주길. 작전 단행(斷行)에 필요한 도구이다.

 

마음이 부풀어 있던 중 ,때 마침 영상의 온도를 회복한다니 서둘러 보따리를 싼다. 후다닥 봇짐 챙겨 튀어 나가는 것이 원래 전문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그런 생활은 하나 둘 접어야 했으니 어찌 할 수 없는 일.

 

바지 장화 챙겼고, 돌멩이 들썩거릴 장비 챙겼고. 쓸 만한 반두 챙겼고. 얼음 깰 끌 챙겼고, 그러면 이제 징그럽게 살고 있는 서울을 박차고 나간다. 가평 현리, 맑은 여울에 입수(入水)하여 잔잔한 고기를 잡아 얼큰하게 끓는 육수에 물고기 텀벙하고 소면 던져서 간만에 魚국수 드셔보려 함. 내가 내게 극존칭,“드셔보려 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배우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 김윤진등이 열연한 영화. 관객 수 몰이로 일본에서도 힛트를 친 "쉬리" 그 당시 100만 관객 넘기기 어려운 시점에서 쉬리의 열풍은 대단했다. 쉬리라는 고기. 맑고 찬 물에서 사는 물고기. 북한에는 없고 남한에만 존재한다는 물고기. 그 쉬리가 제일 먼저 그물 속으로 들어 왔네, 너 이제 어쩌냐~

 

아직 아무도 다녀간 이 없는 눈 위에 올려놓고 찰칵! 찰칵 셨터를 누른다. 손이 곱다. 호호호~ 따순 입김 불어 댄다. 호호호~호빵 생각나네.....찰칵 찰칵.. 쓸 만한 거를 건지려면, 많이 찍는다. 많이 본다. 많이 듣는다. 많이 먹는다. 훗훗훗 많이 먹는다는 듣지 못한 것으로.

 

“쉬리”. 그 아름다움의 극치.. 지느러미에 붙은 아롱진 무늬. 천연기념물 어름치에 버금가는 무늬는 거의 황홀함에 가까우니 제대로 된 쉬리 한 마리는 열 여자 부럽지 않다. ▶ 선생님! 여기서 그런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적잖은 사람들이 이 개울 바닥을 헤비고 지나간 듯 보인다. 물고기 잡기에 이골 난 내가 이리 허덕대며 쑤셔대어도 이렇다 할 고기를 구경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의 "꾼"들이 여러 차례 훑고 지나간 거다. 온도는 마지못해 영상을 회복했다고 하나 여전히 물속은 내 살을 얼려버릴 듯..

 

개울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던 탓에 여울 뚝방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동네 어르신이 있다는 것을 늦게 알아 차렸으니... 불쌍한 듯 보고 계시는 할머니. “뭐 먹고 살길이 있다고 저토록 차가운 물속에서 쇼를 하고 있나! 가련한 인생들이라고. 살아보니 인생 별거 없다. 움켜쥐고 살아야 별것 없단다. 들쑤시고 다녀 봐야 별것 없다”

 

사람 오가지 않는 뚝방에 할머니 앉아 있고, 할머니 가련한 눈으로 보고 있고, 할머니 눈에 낀 하얀 백태..... 백내장,.... 이제 수술해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할머니 모처럼 따스한 날에 바깥 나들이 하셨다...나는 여전히 그물을 잡고 있고 이불 공장 사장은 돌멩이를 들춰내고 있다. 어르신~얼굴에 웃음을 그리고 싶다. 나는 빈센트 반 고호.

 

내가 조금 더 힘을 더 쓸 수 있으니 사장님이 그물을 잡고 내가 돌멩이를 들겠다 하여도 구태여 힘쓰는 것을 자신이 하겠다며 그물을 저기에 대어라~저 돌은 어떠냐 애써 힘을 내는 이불 공장 대표. 사실 그물질의 승패는 그물 잡이에게 달린 것이 맞다만 그런 말을 내지는 않았다.... 돌멩이를 들추자 검은 그림자 하나가 훅 튀어나와 그물 속으로 들어간다. 들어라~들어라~고기가 들었다~구구리라 부르는 동사리 한 마리. 무섭게 생겼다. 여울의 포식자.

 

물고기 사냥에 온 정신을 쏟아 붓다가 뚝방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생각에 허리를 펴고 45도 올려다보니 할머니 자리에 언제부턴가 찬바람이 대신 앉았다. 할머니.... 젊음이 충만하던 시절. 고운 얼굴로 남성들의 시선을 몰수하던 할머니. 쉽게 사랑할 수 있었지만 천생배필을 만나 맑은 냇가 곁에 집을 짓고 손바닥만 한 땅떼기를 일구며 딴 생각이 들을 틈도 없이 살았다, 행복을 찾는 구도자의 삶으로.

 

여울엔 송사리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작년 가을 그 숱하던 물고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불시에 찾아와 흉노적처럼 흉악하게 토벌하고 간 것은 맞지만 그래도 내 손아귀에서 살아남은 녀석들은 있을 텐데. 아마 피라미가 그러할 것이다. 육지에 치타가 있다면 개울에는 피라미가 있다. 그 빠름을 누가 이기랴! 그물 속으로 들어 왔다 싶어 들어 올리면 벌써 사라진 피라미.....그 피라미가 들었다. 흠 잡기 힘든 자태. 눈 위에 올리니 눈보다 더 하얀 피라미. 너의 결백(潔白)함이 부럽다.

 

유년 시절 나는 옥수동 산마루에 살았다. 다소 평지인 약수동을 지나 산만댕이 오름 길. 거친 쇳소리를 뱉으며 깔딱 고개를 올라도 행복했던 어린 아이. 매봉산 꼭대기 바위틈에 앉아 압구정동을 휘돌아 내려가는 한강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 거다. 응봉동. 금호동. 한남동. 약수동이 다 우리 발아래 ....잘 사는 한남동도 깔보며 살았다. 나는 항상 윗동네 였다.

 

어느 한 해. 그 옥수동 마루턱까지 길을 내더니 버스가 들어 왔다. 155번인가? 구파발까지 가는 버스였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 구파발 진관동에는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여울이 있었는데 세상..세상...그렇게 맑은 물은 없었다. 그 맑은 여울에 불거지. 피라미. 그리고 버들치가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살고 있었다. 언젠가 미친 척 찾아 나섰던 진관내동. 눈에 보이는 건 빌어먹을 콘크리트 아파트. 어디가 어딘지.....

 

어릴 때부터 물가 생활에 열광했다. 그러니 항상 친구들을 몰고 물가로 다닌 건 당연지사. 거기다 물고기 잡는 계략이 출중하여 빈 배(船)로 돌아오는 적은 거의 없었다.....옥수동에 버스가 들어 왔고 한 동안 구파발까지 원정 정복을 나가서 버들치를 잡아 돌아 왔다. 미끈거리는 몸에 묘한 반점들. 수온만 적당히 낮춰준다면 집에서도 쉽게 관상용으로 키울 수 있는 버들치.....그물 속으로 큼지막한 버들치가 들어 왔다. 이것이 레알 버들치이다.

 

지금까지 물고기는 한 번 쯤을 보았을. 하지만 이제 내가 묻는다. 이 녀석을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이라는 존재는 본 것 이상을 넘어 설 수 없다. 혹시 하이에나? 라고 말하면 돌아 올 답은 뻔할 뻔자. 왜냐하면 하이에나는 동물의 왕국에서 보았기에. 그럼 시인 정지용의 詩 향수에서 나오는 얼룩배기 황소? ㅠㅠㅠ 이런 투로 계속 말(言)을 내다간 안 그래도 모자란데 더 형편없는 바닥으로 내려갈 수도.

 

말 나온 김에 정지용의 향수를 나지막하게 읊조려 볼 테니 눈 감고 들어 보길. 왜 눈 감고 들어보라나? 쯥 다 외우질 못해서 컨닝 하려고ㅎㅎㅎ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중략.....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롱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을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햐~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자갈과 돌이 깔려 있고 유속이 빠르며 맑은 여울이어야 하니 상류나 중류 권에서 살아가는 한강 계 대륙 종개이다. 이름만 들어도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대륙이다. 우리나라 영토를 가장 크게 확대했던 광개토대왕을 생각나게 하는 고기. 양평 상류 권에서 채집하여 어항에서 관상용으로 키우면서 작은 어항의 세계에 홀릭 되었던 천호동 반 지하 생활이 생각난다. 간만에 만나본다. 내가 대륙 종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물 밖의 생활을 말해 줄 수 있을 텐데.......아무튼 반갑다

 

반나절 여울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다렸던 그 어죽 집에 들어간다. 허름한 식당. 그러나 맛에서는 결코 누추하지 않은 곳.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맛에 엎어진 뒤 적잖은 분들을 모시고 갔었다. 제대로 달리면 1시간 조금 더 . 제대로 걸리는 2시간을 훌쩍 뛰넘는 곳. 역시 이 맛이다. 2인분 이상이 되어야 식탁으로 나온다. 어제 이 맛이 그리워 지인이 달려갔단다. 혼자 갔다 하기에 1인분 안 팔잖여 했더니 돌아오는 말 "기본이 2인분이죠! 주문도 2인분 이상. 한 사람이 갔지만 해치우는 양도 2인분 이상" 귀로에 접어들어 나는 조수석에서 단잠에 빠졌다. 깊은 곳에 그물을 치고 있다.

 

쉬리 이야기는 끝 났을텐데? 맞지.....그냥 사진 한 장이 남아서 서비스로........징그럽게 길다. 그런데 무슨 서비스? 얼른 끝내~........ㅠㅠㅠㅠㅠ

 

 

작년 11월 ,집을 옮겼다.

보통은 이사 갔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을 하기에

나도 그대로 집을 옮겼다 말을 하고 나니

세상이 말하는 것을 너무 쉽게 따라 한 것 같아

결코 나답지 않지만 이미 입에서 나간 말(言)이니 어쩔.

콘크리트로 지어진 집을 번쩍 들어서

내가 원하는 곳에 내려놓은 것도 아니고

그러니 집을 옮긴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옮긴 것으로 수정을 해본다.

물론 말장난이다.

 

이사를 하고 서재를 정리하다가

아주 오래된 책을 한 권 보게 되었다.

"남성 감정 법"

사용하는 언어와 습관 .

겉모습을 통하여 남자의 속내를 들여다 본 책으로

오랜 관찰과 연구가 토대를 이루었을 것이다.

표지를 열고 책 속으로 들어가니

종이는 이미 누렇게 변색이 되었고

글씨는 빈대처럼 작고 납작 붙어 있어

쩔 수 없이 안경을 집어 들고 내용을 본다.

물론 오래 전 보았을 것인데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보니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다.

 

책장을 넘기면서

내게 해당되는 습관에 관한 고찰이 있는 가

책장을 뒤적거려보기로 한다.

그러다 뜨악~발견.

그건 정장 차람 ,넥타이에 관한 것.

우선 참고적으로 내 취향은

양복은 걸치되? 타이 매는 것을 싫어한다.

무언가 목을 졸라매는 것 같고

거기다 와이셔츠 앞에서 새끼줄? 같은 것이 덜렁거리는 게 싫다.

그러니 사람들은 말하지 않겠는가?

왜 넥타이를 매지 않는가?

정장이라면 타이는 기본이야!

그래서 대안으로 마련하여 입는 셔츠가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서도

정장에 크게 비껴나지 않는 차이나티를 두루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떤 모임에서는 내가 가톨릭 신부가 되기도 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건너편에 있던 어느 분이 물었다는 것이다

 

"어느 성당 신부님이셔?"

 

아무튼 차이나 티를 입고 양복을 걸친 후

정장에 넥타이 시비는 많이 줄어들었다.

있다 한들 굳세어라 금순아!

바람찬 흥남부두에 금순이로 살테지만...

그런데 그런 내 취향에 관하여

저자가 책 속에서 언급한 곳을 발견하고

글쓴이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본다.

 

" 넥타이의 기원은 17세기 후반

로와이얄 클라바트라 부르던 연대의 병사가

목에 감고 있던 헝겊을 궁전의 신사들이 흉내 내어

웃옷의 앞깃 장식으로 쓰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복장은 직업. 성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는데

노타이를 좋아하는 남성은

일반적으로 활동가이며 성미가 급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람 밑에서 일하기보다

사람을 부리기 좋아하는 리더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

부하를 거느리길 좋아하며

총체적으로 월급생활은 맞지 않다.

그 까닭으로 월급생활을 이탈하려는 사람이나

외톨이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사업이나 장사를 경영하는 사람에게는 이 모양이 많다.

나는 착실한 샐러리맨과 결혼했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에게는

이런 남성이 부적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남성들의 외면적 특성을 든다면

매사에 소탈한 면이 있어서

수염이 나도 별로 꺼려하지 않는다..........."

 

맞다. 내가 그렇다.

예전에 이효석 생가를 방문하여 집을 둘러보고

벽에 붙은 이효석의 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써 놓은 글을 보았는데 진짜 깜짝 놀랐다.

그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 그는 언제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했다”

 

 

 

지인의 어머니께서 이 세상 잘 사시다고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 분은 많은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입가에는 미소가 있었고

진짜 한 번도 불평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남 몰래 찾아가 도움을 주셨고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 주시며 같이 울어 주셨던

그 어머니가 이 땅에서의 삶을 다 채우시고

어느 날 좋은 날 떠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조차

눈물보단 웃음이

그리고 그분을 향한 감사가

더 많았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 어머니가 떠나시고

이제 그 유품을 정리를 해야 하는데

가족들은 어머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날까하여

유품을 전문으로 정리하는 업체에 맡기려 한다는 뜻을

친한 분들에게 알리셨습니다.

그러던 중 교분이 있던 한 분이

유품 정리는 자신과 친구 한 두 명을 불러서

해보겠다는 뜻을 전해드렸고

목요일 침대를 정리하다

이불 아래에서 봉투 두 개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용돈으로 주셨던 것을 모아둔 돈 봉투였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유품 정리를 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봉투 안에 돈이 큰돈은 아니지만.......

이 일을 듣고 나니

나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역시 책 사이에 지폐를 껴놓곤 하거든요.

말씀을 드리지만 돈은 얄팍하여

푼돈에 불과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돈은

못된 곳에 사용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은행 문턱 나들락거리기도 귀찮고

큰돈이 아니어서 이자도 없을 테고

그러니 손쉽게 찾아서 쓸 수 있도록

즐겨 사용하는 가정 금고?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용하는 취약점은

생각에서 쉬이 잊혀 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푼돈이고

거기다 서재에는 적지 않은 책들이 있어서

어디에 끼워 넣었는지 모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품을 정리하다 찾은 돈 봉투는

유족에게 전달하여 드렸다 했으며

혹시 모르니 오늘 침대 아래쪽에도

한 번 더 찾아보겠다며

그 분의 방을 재차 방문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어제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한 번 던져보았습니다

 

" 아빠가 세상을 달리하면

서재에 꽂힌 책들을 무조건 버리지 말고

잘 살펴보아라!

그러면 혹시 너희 용돈 정도는 나올 수도 있단다.

어쩌면 책을 읽게 하기 위한 편법인지도 모르겠다만 핫핫핫"

 

우리의 부모님들 항상 곁에 계시는 것이 아니니

계실 때 잘 해드려야겠고

용돈도 넉넉하게

사실 그 용돈도

부모님 자신을 위해서 다 쓰시지는 않더라고요.

손주들에게 맛난 것도 사주고..

친구들에게 밥도 사고 ......."

 

 

두어 달 되었을까요?

우리 사무실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5층 건물 ,

그 중 3층에 김 기사가 작업을 나간 겁니다.

1층에는 때가 되면 이용하는 미용실이 있고요.

훗훗훗

머리가 덥수룩하면 치러 간다는 말입니다.

3층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내려온 김 기사.

미용실에서 살짝 부르더랍니다.

어차피 모르는 사이는 아니니까요!

안으로 들어가니

형광등 불이 맛이 갔다면서 좀 갈아 줄 수 있냐고,

그러니 그게 뭐 대수라고~

그러니 형광등 갈아주고

다시 3층으로 올라가서 남은 일을 마감 짓고

사무실로 복귀한 지 두 어 달 후

사무실로 전화가 왔습니다.

혹시 그 때 형광등 갈아 주었던 그 분 결혼을 하셨냐고~

중매를 서고 싶다고.

사무실 여직원들에게서

그에 반응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을 했습니다.

 

"김 기사님 훈남이잖아~

해병대 출신이지!

얼굴 잘 빠졌지"

 

" 그래 맞아! 훈남 맞지!

눈매 보라고

여자들 넘어가기 딱 좋잖아!

웃는 눈 말이지!

옆으로 살짝 째져서 꼬리가 살짝 들린"

 

" 맞지! 더군다나 친절하기까지 하잖아!

여자나 남자나 잘생기면 마음이 간단 말이지

그런데 어쩌냐? 얘가 둘인데......."

 

그런데 더 반전이 있습니다.

김 기사를 소개시켜 주려던 그 여성분도

이미 결혼한 분이라네요.

아니 정보도 없이 선을 서려 했어?

여차하면 불륜 맞선 될 뻔 했습니다.

미용실 사장님

그러면 어쩔 뻔........

핫핫핫

 

 

그 때도 날 선 북쪽바람이

노출된 뺨을 후려갈기던 겨울.

아마도 2021년 12월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진열대를 창문 쪽으로 붙이고

그 진열대 뒤로는

햇볕이 투과되는 것을 방지하려

합판으로 막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열대에 자리 잡을 것은 의류여서

열심히 만든 의류가

햇볕에 잡혀 먹을 수 있다는 의견이

관리부 직원의 입을 통하여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건 신빙성이 있는 말이었고

그래서 창 쪽 진열대 후면은

모조리 방어막을 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 후

대표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 겁니다.

 

"어디선가 찬바람이 들어와요

그런데 그 구멍이 어디인지

칼바람 유입구가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하여 건물 밖으로 나가서 둘러보다

창문 하나가 열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말이어요!

사무실 창문 쪽으로 진열대가 서있고

그 뒤로 합판이 막혀 있어서

우리가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어요.

으으으~추워요..

얼른 와 주셔서 창문을 닫아 주세요."

 

그 전화를 받고

나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기 시작을 했습니다.

 

" 창문을 열어다오 내 사랑하는 마리아~"

 

핫핫핫 추워서 문을 닫아주길 간청하는 분에게

 

"창문을 열어다오........."

 

그 날 열렸던 창문을 닫고 오면서

나는 이렇게 문자를 보내었습니다.

사진에다 글을 붙이면서.....

 

그리고 2023년 1월 3일 화요일

그렇게 창문을 닫아 주었던 그 회사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 겁니다.

그 녀의 말은 이러했으니

 

" 너무 추워요! 문이 3개나 열려있어요~

그 문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단 말이어요~

그 때 문을 다 닫지 않으셨나 봐요~"

 

일단 공손한 톤으로 대화를 유지하였고

바로 가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은 겁니다.

가만히 있어 봐!

그 때 열렸던 문 확실히 닫았고

다른 문이 열린 건 없었잖아

그래서 2021년도에 문을 닫아주고 온 정부장을 불러서

이야기를 하니 자꾸 웃습니다.

분명 열린 문은 하나였고

그건 확실히 닫고 왔다는 겁니다.

다른 쪽 창문이 열린 건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내부에서 창문을 열 수 있는 상황은 Zero~

창 쪽 진열대 후면을 나무로 막아서

사람이 창을 열기 위하여

진열대 뒤로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란 겁니다.

우리도 그러하면

사무실 직원이야 말하면 뭣 해?

그래서 예전 사진이 있나 확인을 하다가

드디어 2021년 사진 발견.

건물 외관에 멋을 좀 낸 것 외에는 다른 점이 없었고

그 때 사진에는 분명 창문이 닫혀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쩐 일.

문은 절대로 외부 조작이 불가능 합니다.

그렇다면 문이 닫혀 답답한 바퀴벌레들이

힘을 합하여 창문을 열은 것일까요?

아님 저절로?

창문을 닫으면서 훅을 다 걸어 놓았는데?

아무튼 어쩌겠어요?

추워서 미치겠다는데.....

어쩌겠어요....

혼자서는 진열대를 끌어내기 벅차니

두 명을 보내어 문을 닫아주고 옵니다.

창문 세 개 닫아주는데

해병대 출신 1명과 태권도 유단자 출신 1명이

1시간이나 걸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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