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꾼이야기

천렵. 반두질. 겨울 고기잡이. 쉬리. 구구리. 피라미. 대륙종개

은혜앵글진열공사 2023. 1. 12. 16:35

 

많이 벼르고 벼르던 것을 오늘 감행하여 보고자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해설?을 하면 픽~하고 실없이 웃어 버릴 테지만 때로는 당신에게 중대한 것이 내게는 경(輕)한 것도 있을 것이니 그냥 비긴 셈치고 들어 주길. 작전 단행(斷行)에 필요한 도구이다.

 

마음이 부풀어 있던 중 ,때 마침 영상의 온도를 회복한다니 서둘러 보따리를 싼다. 후다닥 봇짐 챙겨 튀어 나가는 것이 원래 전문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그런 생활은 하나 둘 접어야 했으니 어찌 할 수 없는 일.

 

바지 장화 챙겼고, 돌멩이 들썩거릴 장비 챙겼고. 쓸 만한 반두 챙겼고. 얼음 깰 끌 챙겼고, 그러면 이제 징그럽게 살고 있는 서울을 박차고 나간다. 가평 현리, 맑은 여울에 입수(入水)하여 잔잔한 고기를 잡아 얼큰하게 끓는 육수에 물고기 텀벙하고 소면 던져서 간만에 魚국수 드셔보려 함. 내가 내게 극존칭,“드셔보려 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배우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 김윤진등이 열연한 영화. 관객 수 몰이로 일본에서도 힛트를 친 "쉬리" 그 당시 100만 관객 넘기기 어려운 시점에서 쉬리의 열풍은 대단했다. 쉬리라는 고기. 맑고 찬 물에서 사는 물고기. 북한에는 없고 남한에만 존재한다는 물고기. 그 쉬리가 제일 먼저 그물 속으로 들어 왔네, 너 이제 어쩌냐~

 

아직 아무도 다녀간 이 없는 눈 위에 올려놓고 찰칵! 찰칵 셨터를 누른다. 손이 곱다. 호호호~ 따순 입김 불어 댄다. 호호호~호빵 생각나네.....찰칵 찰칵.. 쓸 만한 거를 건지려면, 많이 찍는다. 많이 본다. 많이 듣는다. 많이 먹는다. 훗훗훗 많이 먹는다는 듣지 못한 것으로.

 

“쉬리”. 그 아름다움의 극치.. 지느러미에 붙은 아롱진 무늬. 천연기념물 어름치에 버금가는 무늬는 거의 황홀함에 가까우니 제대로 된 쉬리 한 마리는 열 여자 부럽지 않다. ▶ 선생님! 여기서 그런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적잖은 사람들이 이 개울 바닥을 헤비고 지나간 듯 보인다. 물고기 잡기에 이골 난 내가 이리 허덕대며 쑤셔대어도 이렇다 할 고기를 구경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의 "꾼"들이 여러 차례 훑고 지나간 거다. 온도는 마지못해 영상을 회복했다고 하나 여전히 물속은 내 살을 얼려버릴 듯..

 

개울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던 탓에 여울 뚝방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동네 어르신이 있다는 것을 늦게 알아 차렸으니... 불쌍한 듯 보고 계시는 할머니. “뭐 먹고 살길이 있다고 저토록 차가운 물속에서 쇼를 하고 있나! 가련한 인생들이라고. 살아보니 인생 별거 없다. 움켜쥐고 살아야 별것 없단다. 들쑤시고 다녀 봐야 별것 없다”

 

사람 오가지 않는 뚝방에 할머니 앉아 있고, 할머니 가련한 눈으로 보고 있고, 할머니 눈에 낀 하얀 백태..... 백내장,.... 이제 수술해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할머니 모처럼 따스한 날에 바깥 나들이 하셨다...나는 여전히 그물을 잡고 있고 이불 공장 사장은 돌멩이를 들춰내고 있다. 어르신~얼굴에 웃음을 그리고 싶다. 나는 빈센트 반 고호.

 

내가 조금 더 힘을 더 쓸 수 있으니 사장님이 그물을 잡고 내가 돌멩이를 들겠다 하여도 구태여 힘쓰는 것을 자신이 하겠다며 그물을 저기에 대어라~저 돌은 어떠냐 애써 힘을 내는 이불 공장 대표. 사실 그물질의 승패는 그물 잡이에게 달린 것이 맞다만 그런 말을 내지는 않았다.... 돌멩이를 들추자 검은 그림자 하나가 훅 튀어나와 그물 속으로 들어간다. 들어라~들어라~고기가 들었다~구구리라 부르는 동사리 한 마리. 무섭게 생겼다. 여울의 포식자.

 

물고기 사냥에 온 정신을 쏟아 붓다가 뚝방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생각에 허리를 펴고 45도 올려다보니 할머니 자리에 언제부턴가 찬바람이 대신 앉았다. 할머니.... 젊음이 충만하던 시절. 고운 얼굴로 남성들의 시선을 몰수하던 할머니. 쉽게 사랑할 수 있었지만 천생배필을 만나 맑은 냇가 곁에 집을 짓고 손바닥만 한 땅떼기를 일구며 딴 생각이 들을 틈도 없이 살았다, 행복을 찾는 구도자의 삶으로.

 

여울엔 송사리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작년 가을 그 숱하던 물고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불시에 찾아와 흉노적처럼 흉악하게 토벌하고 간 것은 맞지만 그래도 내 손아귀에서 살아남은 녀석들은 있을 텐데. 아마 피라미가 그러할 것이다. 육지에 치타가 있다면 개울에는 피라미가 있다. 그 빠름을 누가 이기랴! 그물 속으로 들어 왔다 싶어 들어 올리면 벌써 사라진 피라미.....그 피라미가 들었다. 흠 잡기 힘든 자태. 눈 위에 올리니 눈보다 더 하얀 피라미. 너의 결백(潔白)함이 부럽다.

 

유년 시절 나는 옥수동 산마루에 살았다. 다소 평지인 약수동을 지나 산만댕이 오름 길. 거친 쇳소리를 뱉으며 깔딱 고개를 올라도 행복했던 어린 아이. 매봉산 꼭대기 바위틈에 앉아 압구정동을 휘돌아 내려가는 한강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 거다. 응봉동. 금호동. 한남동. 약수동이 다 우리 발아래 ....잘 사는 한남동도 깔보며 살았다. 나는 항상 윗동네 였다.

 

어느 한 해. 그 옥수동 마루턱까지 길을 내더니 버스가 들어 왔다. 155번인가? 구파발까지 가는 버스였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 구파발 진관동에는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여울이 있었는데 세상..세상...그렇게 맑은 물은 없었다. 그 맑은 여울에 불거지. 피라미. 그리고 버들치가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살고 있었다. 언젠가 미친 척 찾아 나섰던 진관내동. 눈에 보이는 건 빌어먹을 콘크리트 아파트. 어디가 어딘지.....

 

어릴 때부터 물가 생활에 열광했다. 그러니 항상 친구들을 몰고 물가로 다닌 건 당연지사. 거기다 물고기 잡는 계략이 출중하여 빈 배(船)로 돌아오는 적은 거의 없었다.....옥수동에 버스가 들어 왔고 한 동안 구파발까지 원정 정복을 나가서 버들치를 잡아 돌아 왔다. 미끈거리는 몸에 묘한 반점들. 수온만 적당히 낮춰준다면 집에서도 쉽게 관상용으로 키울 수 있는 버들치.....그물 속으로 큼지막한 버들치가 들어 왔다. 이것이 레알 버들치이다.

 

지금까지 물고기는 한 번 쯤을 보았을. 하지만 이제 내가 묻는다. 이 녀석을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이라는 존재는 본 것 이상을 넘어 설 수 없다. 혹시 하이에나? 라고 말하면 돌아 올 답은 뻔할 뻔자. 왜냐하면 하이에나는 동물의 왕국에서 보았기에. 그럼 시인 정지용의 詩 향수에서 나오는 얼룩배기 황소? ㅠㅠㅠ 이런 투로 계속 말(言)을 내다간 안 그래도 모자란데 더 형편없는 바닥으로 내려갈 수도.

 

말 나온 김에 정지용의 향수를 나지막하게 읊조려 볼 테니 눈 감고 들어 보길. 왜 눈 감고 들어보라나? 쯥 다 외우질 못해서 컨닝 하려고ㅎㅎㅎ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중략.....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롱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을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햐~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자갈과 돌이 깔려 있고 유속이 빠르며 맑은 여울이어야 하니 상류나 중류 권에서 살아가는 한강 계 대륙 종개이다. 이름만 들어도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대륙이다. 우리나라 영토를 가장 크게 확대했던 광개토대왕을 생각나게 하는 고기. 양평 상류 권에서 채집하여 어항에서 관상용으로 키우면서 작은 어항의 세계에 홀릭 되었던 천호동 반 지하 생활이 생각난다. 간만에 만나본다. 내가 대륙 종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물 밖의 생활을 말해 줄 수 있을 텐데.......아무튼 반갑다

 

반나절 여울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다렸던 그 어죽 집에 들어간다. 허름한 식당. 그러나 맛에서는 결코 누추하지 않은 곳.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맛에 엎어진 뒤 적잖은 분들을 모시고 갔었다. 제대로 달리면 1시간 조금 더 . 제대로 걸리는 2시간을 훌쩍 뛰넘는 곳. 역시 이 맛이다. 2인분 이상이 되어야 식탁으로 나온다. 어제 이 맛이 그리워 지인이 달려갔단다. 혼자 갔다 하기에 1인분 안 팔잖여 했더니 돌아오는 말 "기본이 2인분이죠! 주문도 2인분 이상. 한 사람이 갔지만 해치우는 양도 2인분 이상" 귀로에 접어들어 나는 조수석에서 단잠에 빠졌다. 깊은 곳에 그물을 치고 있다.

 

쉬리 이야기는 끝 났을텐데? 맞지.....그냥 사진 한 장이 남아서 서비스로........징그럽게 길다. 그런데 무슨 서비스? 얼른 끝내~........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