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지난 날

다방(茶房)의 전성시대가 있었습니다.

아마 영자의 전성시대와 맞물려가던 시절일겁니다.

손님이 오면 자동으로 커피를 시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으레

고객에 대한 예우로 인식되던 때입니다.

아침이면 다방에서 시원한 냉 보리차도 배달하여 주었고요.

즐겨 다니지는 아니했지만

나 역시 약속이 있으면 다방에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생각난 김에

한 번이라도 이용했던 다방 이름을 적어보면

대학다방. 초원다방. 길손다방. 샘다방.

로터리다방. 별다방. 약속다방.

을지다방. 역전다방.

기억에 잠겨있던 다방 몇 개를 수면위로 올려 보았습니다만

그 중 제일 와 닿는 것은 종점다방입니다.

 

종점 말입니다.

종점....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

인생으로 치자면 "바닥"

탄광으로 치지면 "막장"

하지만 생각을 뒤집어 해 보면 종점이기에.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다시 돌아 설 수 있기도 합니다.

그게 얼마나 큰 용기인 줄 아시잖아요!

다시 시작한다는 용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 종점 말입니다.

 

청년시절.

고상한 척 하느라 걸핏하면 큼지막한 가방 걸치고

제법 큰 노트에 파카 볼펜을 챙겨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던 그 때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정말 맘 먹고 종점까지 갔습니다.

평택 서정리까지 말입니다

왜?

진지하게 詩 한 번 써 보겠다고 말입니다.

웃기죠!

낭만을 핑계 삼아 詩 한 수 써 보겠다고

버스 타고 평택까지

 

- 여정(旅情)-

서정리에 갔었다.

 

시외버스로 두 시간이 걸려

이렇다 할 목적도 없이

무작정 길을 떴다.

 

내 나이 삼십이나 먹었는데

달려온 길은 얼마 되잖고

스치는 낮은 볏 사이로

몇 마리 숨 가쁜 논병아리

모질게도 버티어 왔구나.

 

귀로(歸路)에 황혼 빛이 이 들녘에 내리니

우두커니 돌아 본 내 여정(旅精)

나는 아직 철부지였구나.

 

서정리에 갔었다.

시외버스로 두 시간이나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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