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사람, 겨울 사람-

 

뜸해도 이틀을 넘기지 않는 그가

오늘 오전에도 전화를 넣어 왔다

 

▶ 오늘도 더럽게 덥습니다.

어떻게 사십니까?

그런데 그런 거 있죠?

어떤 누구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덥고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cool하고 통쾌하고

그런데 말입니다.

날도 무쟈게 더운데

사람까지도 후덥지근하면 어쩐 답니까? ◀

 

그가 계속 말을 이어갈 듯하여

잽싸게 그의 입에 방어벽을 치고

이번에는 내가 말을 던졌다.

 

● 그러면 말입니다. 이러면 어떨까요?

생각하면 덥고 열불 나고

후덥지근한 그 분은

세상을 온통 얼어 붙이는 겨울에 생각하시고요

쿨하고 명랑하고 가슴이 뻥 뚫린다는 그 분은

여름 전용으로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여름에는 냉풍기,

겨울에는 온풍기.

그런데

당신에게

나는

여름용입니까?

겨울용입니까? ●

 

### 2023년 8월 8월 1시 30분.

점심으로 왕뚜껑에 김밥 한 줄로 때우면서.

김밥 한 줄이 당연하다 생각마시길

세상에 당연하다 말하고 지키는 사람 흔치 않습니다.

간 혹 왕뚜껑에 김밥 두 줄 삼키는 사람도 있으니.

 

- 물가에서 맺은 의형제-

 

춘식▶상수야~어쩐 일? 오늘 일 안했어?

상수▶ 형님이 낚시하고 계신다 하여서 .

춘식▶ 날 생각했어? 고맙다. 근데 곧 비가 올 거야~

제주도는 쏟아 부었다던데~

바람 보이지? 비바람이야 얼른 집에 가~

상수▶ 그냥 형님 곁에 있을게요!

비 온다 하니까 아무도 안 오네요!

오늘 형님하고 나하고 이 저수지 통째로 전세 내죠.

춘식▶ 전세~으으으으~

우리 집주인은 작년부터 전세를 월세로 바꾸었잖아!

하여간 있는 것들이 더 해

상수▶ 그래도 형님은 부엌이라도 있잖아~

고시원은 겨우 몸뚱이만 꾸겨 넣고 산단 말이에요~

춘식▶ 그렇긴 하지. 요즘 일은?

상수▶ 일은 했는데 돈을 안줘요~매일 내일 준데요!

그래서 거기는 안가요! 사장이 양아치 치사 빤쓰야~

내 빤스는 누렇기만 하지. 치사하지는 않아요.

하긴 그래서 돈을 버나 봐요.

그래서 나는 고시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형!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

춘식▶ 상수야~그래서 나도 낚시를 하는 거야!

상수▶ 그게 무슨?

춘식▶ 낚시는 말이야 공들인 만큼 붕어가 달려 나오잖아.

세상이 이래야 하는 거 아냐?!

상수▶ 형! 붕어에겐 우리가 양아치야~

떡밥 꼬신내로 꼬드겨서 훅~걸어내잖아~

그런데 왜 여자는 안 되는 거야?

떡밥 고소한 냄새가 손에 묻어 있는데.

춘식▶ 상수야! 너나 나나 행색을 생각해 봐!

이렇다 할 직업도 없지. 얼굴 시꺼먼스지!

영철이는 잘 생기라도 했지만 너나 나나 젠장!

그러니 여자한테 백날 떡밥 풀어도 헛일이야~

난 여자한테 맘 접은 지 오래다.

상수▶ 형! 말을 듣고 보니 얼른 고시원이나 졸업 해야겠어

아~생각할수록 열 받네! 치사 빤스 사장 나쁜시키~

형! 나쁜시키 하니까 넌센스 퀴즈 하나 낼께!

러시아에서 제일 불효자는 누구게?

춘식▶ 내가 러시아 사람을 어떻게 아냐?

상수▶ 지 애비 일러바쳐스키~

아 또 열 받네! 치사 빤스 사장스키~

춘식▶ 그냥 잊어! 살다보면 좋은 사람도 만나겠지!

상수▶ 형! 빗방울 떨어진다. 오늘은 그냥가자!

내가 뼈다귀 사줄게!

춘식▶ 오호~좋아! 끄트머리 그 집에 갈 거지?

뼈 해장국은 그 할머니가 여주 근방에서는 일인자다.

방송국에서 나왔는데 귀찮다고 가라 했다지.

이 나이에 돈 더 벌어서 뭣에 쓰냐 하면서.......

상수▶ 부럽다. 나도 할머니처럼 말해보고 싶다.

춘식▶ 무슨 말을?

상수▶ 돈 더 벌어서 어디에 쓰냐?

바닥에 깔린 돈도 숨을 못 쉬고 있다. 이렇게요

춘식▶ 하하하하하! 좋아! 좋아! 그럼 우리 한 번 같이 말해보자.

이 저수지에 아무도 없으니까!

하나 둘 셋 하면 말하기다. 박자 잘 맞춰라!

너 노래방에서 보니 박치더라~

상수▶ 형은 음치잖아. 그럼 우리 비긴 거네! 힛힛힛

춘식▶ 그럼. 우리 제일 큰 소리로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들어간다.

춘식.상수▶ 돈 더 벌어서 어디에 쓰냐?

있는 돈 쓰는 것도 힘들다아~

상수▶ 형! 웃기다. 진짜 우리는 부자네.

뼈다귀 먹을 돈도 있잖아.

돈 있어도 아까워 부들부들 떠는 사람 은근 있거든요.

아~진짜 열 받네! 사장 시키! 치사 빤스

땟국물 질질 치사 빤스. 잘 먹고 잘 살아라.

형 얼른 접어!

오늘 날이 궂어서 일찍 문 닫을지도 몰라.

춘식▶ 그래! 얼른 가자!

날 개면 우리 오늘처럼 나란히 앉아 낚시하자!

큰 거 잡는 사람이 밥 사는 거야!

상수▶ 형! 작은 거 잡은 사람이 밥 사는 거 아니야?

내기에 지는 사람이 사는 거잖아?

춘식▶ 상수야! 그건 치사 빤스같은 놈들이나 하는 룰이고

그래도 나는 부엌이 있는 집에 살잖아!

상수▶ 이래서 난 형이 좋아

비 떨어진다....얼른 가자~

.

▶ 5월5일 많은 비가 예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여주 교도소 근방에 있는 곳으로 낚시질을 갔다.

낚시는 갈 때가 제일 좋다.

“ 오늘 비 많이 온다고 했는데 그럼 밤에 어쩐다지?”

“ 어쩌긴 교도소 찾아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하지”

“ 좋아! 그러자! 그런데 들어 갈 때는 그렇다 해도

나가는 건 우리 마음대로 안 될 텐데? ㅠㅠㅠ“

낚시는 그렇다. 예견대로 작은 파라솔 아래

몸을 꾸겨놓고 거지 중에서 상거지로 부들부들 떨면서,

말은 좋지. 이래야 추억으로 새겨진다 하면서.

5월 5일 여주 동네 작은 저수지에서

 

- 체 념-

 

이제 곧 퇴근

이게 뭐야~하필이면 지금?

조금 뻥쳐서 우동 굵기 만한 장맛비

아침부터 내둥 맑다가 퇴근하려는 이 때

후두두둑 몇 방울 내리는 듯하더니

이내 쏴아~쏴아~

그제사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늘 이 모양일까?

우산 안 가지고 출근한 그 날

퇴근하려하니 다시 깡패같은 비.

언제 그치려나?

배고파서 눈이 희번덕 뒤집어진다.

나는 늘 이 모양이네.

 

▶ 2023년 7월 어느 오후

먹는 것 앞에서 남자의 굳은 결의도 헛것이 되었다. 벙벙해지는 허리 주위를 보면서 먹는 것을 줄여야 하는 것 맞지? 운동을 못하면 입으로 들어가는 양을 줄이는 것이 맞는 거지? 자문자답을 하면서도 먹는 것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것은 어쩌면 넘어야 할 만리장성 일수도. 이걸 사려고 대형마트를 간 건 아닌데 실실 돌아다니다 통치즈를 보게 된 것. 그리고 즐겨보는 EBS 세계 테마기행 중 유럽 목초지에서 직접 만든 치즈를 먹어 보고는 뭐 진실의 미간 운운하며 그 맛에 감탄하는 여행자의 얼굴이 기억이 훅~들어 온 것이다. 하나 사볼까?....사야지 아무렴~

아이고~ 무셔라~요즘 사건들이 좀 있다 보니...그렇죠! 하지만 칼이 누구의 손에 들리느냐가 중합니다. 요리사의 손에 쥐어지면 당신과 나의 食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쇠가 군수공장에 들어가면 무기로 탄생하고 대장간에 들어가면 농기구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TV에서 본 것은 있으니 치즈를 썰어 봅니다. 얄팍하게 베어 내려다 이왕 먹는 거~후후후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고 유일하게 치즈만 올려놓습니다. 어쩌다보니 계단처럼 되었는데 뭐~멋으로 먹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니니 오늘은 내가 맘대로 주물럭거리는 "내가 요리사"입니다. 사살은 다른 것도 얹히고 싶으나 그렇게 하자면 또 이것저것 준비해야하니 그 번거로움을 감내할 자신도 없고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늘 말하는 삶의 유형 "심플하게 살자"를 모토로 심플한 치즈 토스트를 만들어봅니다.

그리고 용맹하게 토스트를 반쯤 접어 한판승의 사나이가 되려 합니다. 왜 접냐고요? 그냥 반반한 토스트에 치즈 올려 교양 있게. 우아하게 ,폼 나게 식생활 하시지! 우훗? ㅠㅠㅠ 그냥 나는 나 입니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해보지 않았겠어요? 결과는 그런 삶이 당체 내게는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 나는 나지! 내가 그가 될 수 없고 내가 당신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오늘까지 사는데 그렇다고 규칙 없고 게걸스럽게 살지는 않으니 지나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으으으~무슨 변명을 그렇게...그러면 사람 없어 보인다 ㅠㅠㅠ. 자 그럼 크게 한 입 물어 볼까요? 과연 맛은 어떨까요? 말해 뭐해!

-감정이 이성을 이기던 날에-

 

컴퓨터를 끌어안고 있다가

거듬거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박차고 나가

시장 앞 그 떠들썩한 마트로 간다.

밖은 지금 장대비 작열.

근데 이 상황에 어찌하여 마트를?

뜬금없이 우윳빛처럼 뽀얗고

순한 비누로 머리를 감고 싶어진 것.

베란다 선반에는 여전히

이런저런 경유로 들어온 비누 선물 셋트가 꽤 있지만

정작 내가 찾는 뽀얀 비누는 없었기에.

아내가 알면 이 얼마나

어이없는 짓을 벌이는 것인가?

그렇다고 과소비라고 말하진 말길.

꼴랑 세숫비누 하나이니......

 

이제는 이따금

감정이 이성을 이기는 것을 보고 싶은 거다.

오랜 시간, 이성이 나를 얼마나 옥죄고 지배했는가?

이성에게 지고 살았던 시간 속에

돌아 본 뒤안길, 후회도 있었으니 말이다.

 

▶야!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감정에 사로잡히면 그냥 훅~가는 거야“

 

학습은 언제나 이성적인 것이고

정답도 항상 이성적인 것에서 나왔다.

진로를 상담할 때도 나는 덜떨어진 것을 희망했었나보다.

▶네가 원하는 그 길은 먹고 살기 힘들 거야!

어쩔 건데?

네가 좋아하는 것은 알겠으나 도대체 뭘 먹고 살 건데?

시간 금방 간다!

고생 사서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 해!

 

이성은 차가웠다.

언젠가 뱀을 잡아 목에 걸었을 때

그 서늘한 체온처럼 이성은 냉철했다.

그렇게 이성을 스승으로 두고 살아온 탓에

남들만큼은 살게 된 것, 그건 인정.

하지만 누르고 살았던 뜨거운 가슴은

미련으로 응고가 되고 말았으니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

 

컴퓨터 앞에서 되지도 않은 혼잣말을 하다가

뽀얀 비누로 머리를 감던 사춘기 시절이 생각났다.

나도 그 비누로 머리를 감았고

내 친구 창수도 그 비누로 머리를 감고 쏘다녔다.

하얀 비누로 머리를 감고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어른들은 꼭 이렇게 말했고

그럼 나는 꼭 이렇게 답했다.

아자쒸이~대가리에 피 마르면 죽어요...)

엄마를 속이고 여학생을 만나러 나간다.

신당동 건너 문화서적 골목

순백한 비누로 감아서 그럴까?

머리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

가슴은 뛰고 얼굴은 포도주 색

장충중학교 3학년 중삐리가 뭘 안다고

머릿님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히죽거리며 78번 버스에 오른다.

창밖을 본다.

억수같은 비가 온다.

방바닥에 달라붙어 있어라~

집을 나서면 빗물에 너덜거리는 몸이 될 거야 이성의 귓속말.

음음음음......

에라 ~모르겠다.

하얀 비누를 사러가야지.

사방에서 물난리가 났다는 뉴스를 뒤로하고

집을 뛰어나가 그 마트로 달려간다.

하얀 비누로 머리를 감아야지.

그러면 머리에서 좋은 냄새가 날거야~

 

 

2023년 7월 극한호우 내리던 날,

조금 구라를 쳐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나오는 산해진미가 있다.

단가가 나가는 한정식이

거기에 가까운 상황일 것이다.

어떤 것부터 달려들까?

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까지 눈 돌아가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는가?

그럼 아주 부유한 집안이거나

소식(小食) 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일거다.

 

오늘 점심

어느 상차림에도 부럽지 않는 만찬을 했다.

한강에 빽빽하게 앉은 오리떼 마냥

어느 녀석부터 해치울지

고민하는 수랏상이 아닌,

메인요리 하나에 주변음식 두어 가지.

이를테면 된장찌개에

두어 가지 찬과 윤기 흐르는 쌀밥 같은.

 

아내가 처가에 다녀오면서 풋고추를 따왔다.

그건 봉지에 담아서 파는 고추와는 전혀 다른

싱그러운 매력 뿜뿜 날리는 녀석이다.

된장에 찍어서 깨물면 아작하고 씹히는 식감.

그리고 뒤따라오는 알싸한 매움.

그러면 한 박자 늦춰야하는데

죽기 살기로 몇 개를 더 깨물어 대면.

입에서 이 난다.

물 한 모금 넣고

생 라면이라도 넣으면

바로 부글부글 끓을 것 같은 기세이다.

오늘 점심은 오로지 고추와 함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 하는데.

5월 볕에 부탁하며 고추를 심고,

점심 때 포동포동 살 오른 고추 몇 개 따서

된장에 밥 한 공기 뚝딱할 수 있는.

 

오늘은 고추 단품으로

쿠쿠 밥솥에 꽤나 있던 밥을 작살냈다.

어떤 요리도 부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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