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와 잡채-

 

▶뭐야? 이거 잡채 아니야?

이거 오늘 기분 잡쳤구먼.

에이~오늘 그 일 빠개지게 생겼어!

 

어떤 상황을 보면

우선적으로 부정적인 것을 떠올리고

그 결과물을 말로 사람입니다.

한 편 한 사람은

 

● 뭐야? 오우~이거 잡채 아니야?

계획하고 있던 그거 잡채야 겠어.(잡아채야)

좋아! 잘해서 이번 일 성사 시켜보자!

나이스야~

 

잡채입니다.

잡치든, 잡아채든

오늘은 둔촌시장에서 잡채 두 팩 사가지고 갑니다.

며칠 전 시장 통을 지나가다

윤기 좌르르 흐르는 잡채가

두 팩에 오천 원이라 적힌 것을 보고

그래~다음엔 반드시 두 팩 잡아채서 간다!

굳은 다짐을 했거든요.

뭘 이런 거 가지고 다짐은?

훗훗훗! 남자가 반찬 집 앞에서

주춤거리는 것이 좀 뭐해서....

그보다 사실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나는 분, 나의 어머니입니다.

옥수동 마루턱보다 더 높은

매봉산 기슭에 살던 초등학교 때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동대문 시장에 갔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배고픈 시절 동대문 시장에는

좌판에 즐비한 먹거리들이

지나가는 사람을 호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 유명한 것은 시장 안 네거리에

커다란 대야 안에 잡채를 한가득 문대놓고

사람을 끌어대는 잡채 장사 아주머니

그 분들은 다닥다닥 붙어 장사를 했고

사람들은 그냥 길바닥 앉은뱅이 의자에

펑퍼짐히 즐비하게 앉아

한 그릇에 얼마씩 내고 찰 지게 흡입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그 맛난 잡채를 사주고 싶으셨나 봅니다.

금호동에서 155번 버스를 타고 종로6가에 내려

따라 오라며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셨죠!

그리고 지금의 광장시장을 헤집고 들어가

점포도 없이 양은 다라이(대야) 하나에 의존하여

장사를 하는 잡채 라인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그 중 빈자리 두 개가

나란히 난 곳을 찾아 둘러보셨습니다.

 

▶엄마? 잡채 먹으려고?

 

옥수동과 동대문은 수월찮이 떨어진 곳이고

지금처럼 자차(自車)로 이동하는 시절도 아니니

친구를 만날 공산(公算)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행여나 우리 반 부반장 그 아이,

뽀얀 피부에 말 틀 기회도 주지 않지만

어떻게든 수작을 부려보려던

그 아이가 지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어린 나의 머리를 쥐어 잡고 흔들었습니다.

겨우 빈자리 두 개를 맡은 엄마가

어서 앉으렴 손짓을 했지만

나는 길바닥에서

잡채를 비벼 파는 거기로 다가가지 않았고

엄마는 얼른 오라고 손짓을 하고

결국 엄마는 겨우 잡은 자리를 포기하고 일어나서

등을 돌려 눈물을 보이시고 말았습니다.

 

그 길로 엄마와 나는 돌아서서

155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악다구니처럼 경사진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엄마는 말이 없이 앞서 가시고

나도 말없이 뒤를 따랐습니다.

집에 돌아 온 엄마는

부엌에서 한동안 소리죽여 흐느끼셨고

그런 엄마를 보는 나는

미안하기도 하면서

창피하잖아~창피하다고

우리 반 부반장 계집애가

길바닥에 쭈그리고 않은 나를 보면 뭐라 하겠냐고

속으로만 항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고

변변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어엿한 사회 구성원 중 하나가 되고

가정을 가지고 아이가 생기고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시장 통을 지나가다

반찬가게 잡채를 보고 그만 울음이 왈칵 났습니다.

속된 말로

호적에 잉크도 안 마른 어린놈이

그깟 것을 창피하다고 엄마를 울렸네.

생각하여보면 나를 위한 것도 크지만

어쩌면 엄마가 잡채를 먹고 싶었을 수도 있었는데

그거 길거리에 쭈그리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온유하셨던 내 어머니.

그러면서도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선

단호하게 교육시키신 어머니.

지금 내 앞에 계신다면

재롱이라도 부려서

한바탕 큰소리로 웃게 할 수 있을 텐데......

조만간 시간을 내어서

동대문 광장시장을 가볼까 합니다.

지금도 눈에 선한 잡채 파는 아주머니들.

큰 대야에 옅은 초콜릿 빛 잡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높이가 30cm도 안될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왼손에 잡채담은 그릇, 오른 손으로는 흥겨운 젓가락질.

그리고 그 뒤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맛있는 잡채.

이제는 외국인들도 덤벼들어 먹는 잡채.

오늘은 반찬가게에서 사온

잡채 두 팩으로 점심을 때립니다.

잡채 빛깔이 그 때

그 동대문 시장 잡채와 너무 닮았습니다.

내가 날이 갈수록 내 어머니의 얼굴을 닮아가듯.

 

2023년 7월 20일 점심시간 잡채를 앞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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