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보따리 싸야 합니다. 얼른? 무슨 급한 일이? 혹시 전쟁이라도?

훗훗훗 남자라면 전쟁이라면 싸워야 할 상황이지 보따리 싸는 것은 좀 아니지요.

작년에 우리가 장충동 어느 가파른 길옆에 있는 건물에 설치했던 행거와 경량랙을 옮기는 것입니다.

내 이름 석자로 된 소유 건물이 아닌 이상에야 이사는 가야는 것이 99%의 임차인 형편이죠.

이름 석자? 난 이름이 두 자인데? 그럼 난 어쩌고? 성은 김이요 이름은 철. 김철인데 이름 두 자는 그럼 내 소유의 건물을 가질 수 없나요?

으으으으~ 까칠하신 분 방문하셨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이제 바야흐로 계절이 바뀌는 지점인데 잘..그대로 잘 지내시죠? 어제 한강으로 들어가다 보니 볕 좋은 곳에 개나리 꽃망울이 벌써 올라오던데

당신도 잘 지내고 계시죠? 보시다시피 나는 여전합니다. 내게 맡겨진 것에 나름 투철한 직업의식과 더불어 하는 일에 윤리의식도 조금 가지고 일을 합니다. 오늘은 장충동에서 신설동으로 옮겨가는 작업이고요! 앗차! 말 했어죠? ㅠㅠㅠ

이렇게 옮기는 작업은 회사 입장에서는 도움이 없어요. 그저 인건비+공과잡비 수준이니 회사 경영 측면에서 보면 그냥 셈셈 입니다만

회사의 존재목적이 이윤창조라 해도 돈만 쫓아가면 결국 돈이라는 녀석이 교만하여져서 돈.돈 하며 쫒는 자를 내칠 것입니다.

설령 이윤 창출이 풍성하여 진다하더라도 마음속에 돈만 쫒아가는 사람은 오만하여지기 십상일 것입니다. 돈이라는 것이 겸손과 더불어 공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행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말만 하고 맡겨진 일에는 등한히 하는 거 아냐? 하고 의문을 제시하는 분이 있을까 하여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신설동으로 옮겨와 작업하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일은 끝도 없죠! 생명 유지를 위하여 그리고 맛으로 인한 삶의 기쁨도 충족하기 위한 여정이 호흡이 멈추는 그 날까지 지속되는 것처럼

먹고사는 수단이 되는 나의 행거 작업은 계속 유지가 될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때때로 즐겁기도 해야 합니다.

솔직히 당신도 오늘 출근한 회사 생활이 온전히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잖아요! 지켜지지는 않지만 가시적으로 나타나야하는 성과도 있어야 하고 윗선의 질책도 가끔은 있을 수 있고

물론 전부가 그런 상황이라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것을 찾아보아야 할 겁니다. 매일이. 한 달이. 일 년이 웃는 낯빛을 나타낼 수 없다면 스트레스를 피하여 무언가 기쁨이 되는 것을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만

대체적으로 그런 것만 하기는 생활 유지가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쵸? 그러니까 기본 욕구를 충족하려면 일정 이상의 급료는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게 참 딜레마죠.

둘이 나와서 함께 작업을 하는데 이제 작업의 끝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끝이 보일 때가 어깨가 가장 무겁기도 하고요. 동트기 전이 가장 추운 것처럼 말입니다.

조금만 참으면 아침이 오는데.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살아 내는 마음도 오픈해봅니다. 많이 힘들 때, 지칠 때 내가 나에게 " 이제 동이 트려나 봐! 삶이 이렇게 추운 것을 보면 말이지. 아침이 오려나 봐....아침이 말이지"

신당동 간다. 신당동 왔다. 하겠다는 의지가 통한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통하다. 언젠가 언젠가는 내 육체가 내 뇌(腦)에서 내리는 명령을 전달받고도 수행하지 못 할 날이 오겠지. 서글퍼도 인정. 자자자자~. 오늘은 앵글선반과 행거 작업.

난이도가 없어서 밋밋하게 작업을 해도 되는 날이다. 앵글이 들어 갈 장소에, 행거가 들어 갈 위치에 잘 들어가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그런 날이 있다. 어제는 쌔가 빠지게 일을 했다면 오늘은 수월한 일도 있는 것이다.

때론 어제 혀 빠지게 일을 했는데 오늘도 새빠지게 해야 하는 날도 있다. 이건 일에 관한 이야기이고 삶의 아픔도 그러하다. 인생의 즐거움도 그러하다. 좋은 날 뒤에 좋은 날. 울적한 날 뒤에 쓸쓸한 날. 오늘은 볼트를 사용하여 조립하는 앵글선반과 창고형 행거 작업을 한다.

앵글이 그럴싸하게 섰다. 반듯하다. 저 빈틈없는 각을 보라. 엄격하게 훈련된 군인의 부동자세 같지 않은가? 당신은 몰라도 나는 그렇게 보인다. 나의 마름은 언제나 잘 정돈된 정원 같으니까 핫핫핫 거짓말 하니 혀에 가시가 돋는 듯. 오늘은 얼른 끝내고 신당동 떡볶이나 먹어 볼까?

 

이제 행거를 만져볼까 한다. 그런데 떡볶이를 생각해서 그런지 원형 파이프가 떡볶이로 보이네. 지나치게 생각하면 허상이 보이는 현상. 뭘 그리 생각하나? 오늘의 작업을 마치고 소방서 골목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면 왼편 과 오른 편에 즐비하게 늘어선 떡볶이 집들이 보일 텐데 유명한 집이나 덜 유명세를 탄 집이나 아무 곳으로 쑥~들어가면 된다. 먹어보니 맛은 거기서 거기. 하루를 감사한다. 이 얼마나 멋진 하루인가? 약간만 마음을 소박하게 먹으면 행복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젠 간다. 간다는 의지에 반응을 하여주는 육체에게 고마움을 표하다.

-아줌마 여기서 그러시면 안 돼요-

 

아주머니 휴대폰에 얼굴을 박고 지나가신다.

“아주머니 그러시면 고꾸라집니다.

그러면 단박에 뼈 나가요.“

 

아주머니 불쾌한 기색 일도 없이 웃으시며 “네”

그리고 나를 지나쳐서

다시 휴대폰에 얼굴 묻고 가던 길 덤덤하게 가시네.

무엇이 아주머니 마음을 저토록 홀렸을까요?

넘어지면 손목 나가는데...

넘어지면 얼굴에 흠이 생길 수도 있는데..

먼눈팔다 왼 편 손목 골절된 내가 말해 본다.

 

“딴전 팔다 인생 곤욕 치른 친구도 있어요.”

 

2024년 2월23일 금요일 오후 6시

길거리에 서서. 낚시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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