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용하던 줄자를 또 잃어버린 거다.

그럴까봐, 아예 허리띠에 꽂고 다녀야지 했는데

잣대질을 하면서

고새 어디다 놓아두고 삘리리 돌아 온 것이다.

 

하루에 한 가지씩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지만

그건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아까워하는 것들에 관한 정리의 훈련인 것이고

자는 오늘도 있어야 하고 내일도 사용하는

직업상 반드시 필요품이니

이건 버리거나

허투루이 놓아두고 다니면 안 되는 것인데

오늘 아침 자(尺)를 쓰려고 찾았을 때

자는 고사하고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내 마음에 허탈감이었다.

상실감이 점점 커진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아내가 한 마디 거든다.

 

" 당신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래!"

 

아내의 말에 두말없이 인정을 하지만

버리는 훈련을 하는 내게

이건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는 것이고

이런 것이 점차로 쌓여서

서울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살고픈 나의 의지를

더욱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향이

좀 더 빨리 나를 이끌어가는 것에

위로를 받아 보기로 한다.

 

어제 서산에 사는 벗과 통화를 하며

자신의 삶이 거치적거린다 판단이 되면

구질거리지 말고 알아서 판단을 한다 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말에 격한 동의를 하기도.

서산에서 농부로 사는 친구의 삶이 버겁기는 하지만

자신의 원하는 대로 사는 모습에서

커다란 부러움을 표해주었다.

나는 서울이란 큰 도시에 산다.

도회지의 삶은

그 문명 안에서 거할 수 있는 틀을 만들었고

그 조건에 맞는 인생 스피드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빠르고 더 멀리까지 달리고 달려야 할 것이다.

 

오늘은 무엇을 버려볼까?

잃어버리는 것과 버리는 것 사이에서 말이다

2023년 9월13일 수요일 고 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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