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이었을 겁니다. 퇴근하여 집으로 들어가는 관리실 앞에 빈 페트병. 언 녀석이 ㅎㅎ 쓰레기를 화단에 버렸나? 참 개념들이 없어! 투덜거리며 화단 앞으로 다가서니 글씨가 보입니다. 채송화를 살려 달라는 간절한 청원.

점심을 시답지 않게 먹어서 저녁이라도 알차게 먹어야지! 굳은 결의를 하며 얼른 집에 올라가려다 그래도 어쩐?하고 몸을 굽혀 화단에 눈을 바짝 갖다 대어봅니다. 채송화? 이 식물들은 채송화가 아닌데? 아주 유사하게 생기긴 했는데 분명 채송화는 아니었습니다. 에잇~이름이나 잘 알고 하던지 투덜투덜...서푼도 안 되는 지식으로 글쓴이를 판단하였습니다.

뭉크의 "절규"..... 일그러진 얼굴을 부여잡고 놀람과 좌절을 표출한 그림처럼 채송화를 살려달라는 절규를 느낍니다. 그 절규는 좌절이 아니라 어쩌면 용기입니다. 당신과 나의 절규는 드러내놓지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거나 대면하여 풀고자하는 의지도 없는 회피가 아닙니까? 용기 있는 절규. “채송화를 살려주세요.” 화단 앞에서 잠시 서성이던 나는 배고픔을 감지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12층 버튼을 급하게 누르고......그 날 이후 그렇게 하염없이 또 보름이 지나고.

관리실 앞을 지나가다 제법 자란 식물 사이로 언뜻 보이는 작은 꽃 하나. 빠알간 꽃 한 송이, 저건? 그러네! 저건? 맞습니다. 대략 보름 전 즈음 투명 페트병에 검정매직으로 쓴 글씨" 채송화를 살려 주세요" 그 간절한 애걸(哀乞)에 채송화가 어디 있냐? 잘 알고나 청원을 하지 코웃음 치며 지나갔던 그? 이번에는 다른 마음으로 화단에 몸을 굽혀 코와 눈을 늘어트립니다.

채송화가 맞네! 채송화가 있었어! 우월한 식물의 장벽에 막혀 겨우 숨만 쉬고 있었던 가녀린 채송화. 아빠와 함께 했던 추억을 그리다가 불현듯 떠오른 기억 속에 채송화를 생각하다 나지막하게 부르던 노래 속의 낮은 꽃.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채송화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꽃 , 숨어 있던 채송화, 페트병에 글로 애타게 부르짖던 그 사람은 감춰있던 채송화를 어찌 알았을까요? 아직 덜된 어느 봄 날 씨앗을 뿌린 걸까요? 한 송이가 피어난 것을 보면 씨앗에 의한 발아는 아닐. 한동안 채송화 앞에서 떠나질 못했습니다. 내 시각으로 섣불리 판단했던 보름 전 생각.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그 고질적 뿌리는 내 삶 속으로 얼마나 깊게 뿌리를 내렸는지....

제법 숲을 이룬 화단 식물 사이를 헤치며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때 채송화를 살려달라고 청원하는 글을 남겼던 맑은 페트병. 나의 오만으로 비웃으며 돌을 던지게 했던 그 페트병이 아직도 있을까? 미안함을 전달하고 싶었던 겁니다. 비록 글쓴이는 만나 보기 힘들겠지만 그 분이 남긴 페트병이라도 찾아서 굽죄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찾아내고야 말았던 페트병. 그리고 그 사이 페트병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글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채송화. 아껴 주시면......그러자 페트병 뒤편에도 또 다른 글이 있다는 것을......

그랬습니다. 투명한 페트병 주위로 글이 있었습니다. 간절한 당부와 그에 걸 맞는 감사와 보응의 글 “ 저는 채송화입니다. 아껴주시면 예쁜 꽃으로 보답할께요!” 보답한다! 말은 숱하고 그런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은 귀하고 드문. 누구일까요? 이 고마움을 페트병에 붙인 사람은

어린 아이일까요? 세상 이치를 좀 안다고 자부하는 어른일까요?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나이로 구분하는 걸까요? 아님 보이는 외형? 마음 씀씀이? 채우고 있는 지력(知力)?

솔직히 낫살이나 먹어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희미하게 보이는 그림 하나. 품어주는 사람. 무슨 말을 하여도 받아 주는 사람. 나는 그런 분을 뒤따르고 싶습니다. 비록 어린아이 일지라도 본받을 이로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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