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숙제 같은 것들이 많아서 조금 이르게 도착한 회사. 그런데 시계 엔틱하죠? 아직도 오리엔트 시계가? 네! 당신이 말하는 그 오리엔트 맞습니다. 잠시 후 거래처 대표께서 지나가다 방문 하여 싸구려 봉다리 커피 한 잔씩 박치기하려 할 그 때 , 한통의 전화가 긴급하게. 벨소리는 이렇게 "헬렐렐레~헬렐렐레~헬렐렐레~ ㅎㅎㅎ

 

한강에서 살짝 사귄 분이(여자 아녀요~ㅎㅎ) 고기를 가져 갈 수 있냐고 전화를 주신 겁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를 주었다는 것은 밤을 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자신은 고기와 상관이 없으니....나도 한 때는 밤을 새곤 했는데 이제는 밤을 재웁니다. 키득키득!

예기치 못했던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나의 친구 "한강"으로 고기 앵벌이 들어가십니다. 내 주위에 아시는 분들이 민물고기를 그렇게들 좋아라~하셔서 주는 기쁨으로 앵벌이 합니다. 우리가 제공하는 것들은 신선도 100%. 그리고 유통단계 없이 산지 직송체계 되시겠습니다.

모래사장에 콘크리트를 덮고, 강물의 범람을 막아보려 턱을 세우고, 다시 그 둔덕 위로 끈적이는 아스팔트를 펴서, 사람 편의에 맞춰 굳히기 작전에 들어간 지 벌써 오래. 이후로 낮이고 밤이고 거기다 새벽에도 씽씽~자전거, 아~씽씽 비키세요~자전거 지나갑니다.

이른 아침이어서 중턱 콘크리트 통행로에는 사람이 붙질 않았습니다. 미루나무 옆길엔 씽씽~자전거가 달려도, 중간 길엔 저녁까지 휑하게 뚫려 있을 겁니다. 이렇게 길이 좋은데 나는 아직도 떠날 챤스만 셈하고 있네요! 이 길 따라 한 없이 걷다보면 한강 하구겠죠? 그럼 삶은?

 

황석영 장편소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엔 이런 글이 있습니다.▶여름이면 연변의 짙푸른 백양나무 그늘이 드리워지기도 하는 저 버스의 창가 자리에 턱을 쳐들고 오만하게 버티고 앉아서, 타관으로 떠날 수 있을 날은 언제쯤일까. 접근조차 손쉽지 않은 버스를 쳐다보면서 아우와 나는 버스가 떠날 때까지 정류소를 떠나지 않았다. 멀고 먼 타관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은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오래된 노트 한 권을 뒤적거리다 시답지 않은 글 하나를 찾았습니다. 휘갈긴 글. 글씨체는 그 때나 지금이나 같네요.. 1989년도에 시외버스를 타고 평택 서정리라는 동네로 무작정 떠난 일이 있었네요. 하룻길 여정. 기억으론 평택으로 흘러 서해로 들어가는 물길. 서정리 다리에 걸쳐 앉아 노트에 긁적였을. 돌아보면 긴 듯 하여도 당신이나 나도 하루 밤 잤는데 황혼.

한강은 나의 오랜 친구입니다. 어린 날, 언제, 어느 때 찾아가도 한강은 나를 반겨 주었습니다. 한강 품이 그리울 때면 옥수동 산비탈에서 기어 내려와 단국大와 부자동네 유엔 빌리지 샛길로 제3한강교를 건너 압구정동 배 밭 뚝방 아래 강변 모래사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엄지손톱 크기의 노란 조개는 물기 머금은 모래 속으로 감쪽같이 은둔했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나를 따돌리지는 못했고 칠성장어. 징거미. 참게. 어느 날은 팔뚝만 메기도 내주었던 한강. 그 모래사장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날엔 어김없이 별들이 내 얼굴로 와르르르 쏟아 내렸고 그렇게 강가에 누웠다 한 밤중 집으로 돌아갔던 날엔 어김없이 내 종아리를 제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아들이 걱정되었던 어머님의 회초리.

그렇게 절친으로 보내다 세상이라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나 한 마디 이별의 말도 없이 어쩌다 한강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7월의 장대비가 한강물을 불려도 나는 더 이상 한강에 있지 않았습니다. 압구정동 김씨 아저씨네 과수원에 노란 배가 주렁주렁 달려도 철조망을 넘지 않았습니다. 거친 바람이 남산 소나무를 흔들 때도 나는 더 이상 거기 있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바람이 났던 거죠! 바람이 나면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주위의 충고도 들리지 않는 것.

그리고 알랑거리는 세상에 눈이 멀어 짝짜꿍하며 살다가 어느 해 8월 한강의 절규를 듣게 된 것입니다. 유독 더웠던 그 해 제3한강교를 지나다 한강을 보게 되었고 핸들을 잡고 있던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세상에 들러붙어 던져주는 부스러기나 얻어먹으며 뭐 하는 거냐고?“ 머리를 휘두르다 핸들을 놓칠 뻔 하고서야 정신이 돌아 왔습니다.

그 날 저녁 잠실 토끼 굴 아래로 차를 몰아 한강 가장 가까운 곳에 세우고,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리고 그 아침, 서울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지며 콘크리트 도회지에서 삥 뜯어 먹고 살던 오랜 고착화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차 문을 밀고 나가서 본 한강은 순수할 때 보았던 그 잔물결이 이른 볕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편의점 같았던 세상을 조금 멀리하고 다시 한강으로 들어갔던 날. 한강은 여전히 나의 친구로 기다리고 있었음을.

그는 오늘도 저 비밀의 통로를 지나면 낚싯대 받쳐 놓고 앉아 언제 미끼를 물고 늘어질 줄 모르는 물고기를 기다리며 빛나는 눈으로 앉아 있을 겁니다. 기다린다는 거. 곤욕스런 과정이지만 그 끝의 맛을 알기에 밤을 보낼 수 있는 겁니다. 가슴이 콩당 거리기도 합니다. "미친" 맞습니다. 우리는 어떤 하나에 다 미쳐있죠!. 멀쩡한 척 하지만.

그가 저기 있습니다. 뭐라고 했어요?! 저기 있을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밤을 새하얗게 날려 버리고도 낯 찡그림 하나 없이 씨익~웃습니다. 나이를 몇 개 더 먹다보니 친구가 무엇인지 조금 더 알아 가고, 좋은 친구를 구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 갑니다. 좋은 친구는 자신의 유익보다 상대를 더 위한다는 것도.

좋은 친구....,자신은 언제나 조연이고 상대가 늘 주연이 되도록.. 이런 말 들어 보셨는지요?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좋은 친구라면, 훌륭한 리더라면 같이 한 동료에게 우선적으로 가장 맛난 것을 앞으로 밀어 주고 자기는 마지막으로 먹는다는 말입니다. 굳이 먹는 다는 것으로 표현을 했지만 무슨 뜻인지 아시죠? 모르시면 우리 더불어 한강으로 가서 편의점에서 뽀글이 라면도 먹어 보고, 행복한 사람들의 깔깔대는 소리와 빛나는 얼굴들을 보기로.

우리는 내가 주연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함몰되어 삽니다. 자녀들 교육도 그렇게 시킵니다. 옆 집 아들 창수보다 내 자식 등수가 떨어지면 지구가 파탄 나는 줄 알고 지금 다니는 학원이 못마땅하여 여기저기 검색하고 학원을 갈아 태웁니다. 예의? 그 딴 거 어디다 써먹으려고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1등이어야 합니다. 케케묵은 예절? 그런 건 종말처리장에나 버리라지. 그리고 결국 당신도 자식에게 배신당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렇게 키웠잖아요! 내가. 당신이.

한강에서 밤을 보내며 한강이 선물로 내어준 조과물을 보여주는 조우(釣友). 조우(釣友)라는 말도 가슴에 안기지만 좀 더 격조를 높여 표현하면 조사(釣士). 낚시하는 선비. 그는 지금 우리에게 땀의 선물. 물고기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가물치. 메기. 그리고 민물의 황제 쏘가리입니다. 누구 줄까? 벌써 행복합니다. 줄 수 있다는 거. 이 물고기를 받으면 좋아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 맛나게 요리하여 친구들을 부르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런데 이거 산삼 아니죠? 이파리가 좀 닮은 듯 하여 말입니다. 어설프게 알면 사람 잡습니다. 그런데 진짜 말입니다. 이거 산삼 아닐까요? 이거 산삼이면 대박. 한강 모처에 수두룩하게 있으니까요! 맞으면 당신에게 한 뿌리 드리겠습니다. 캬흐~넓은 마음. 아시죠? 우리 마음이 얼마나 넓은지 군대 귀신이 들어가고도 남는 면적이라니까요!

아침부터 물고기 앵벌이하고 뒤돌아 사무실로 돌아가는 한강 난간에 하얀 술병 하나. 아마 알코올 도수 확 낮춰서 여성 고객을 쓴물의 세계로 더 많이 영입시키려는 수완이 옅 보입니다. 하얀 술병만 보아도 좋게 여기는 감정이 불 일듯 일어나게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저렇게 놓아두고 가면 어쩐다지? 물 들어오면 쓸려나가 떠돌아다니다 결국 파편으로 남아 날 선 흉기가 될 텐데 말입니다.“ 알게 뭐에욧? 내가 1등이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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