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깬 잠-

 

어쩌다 낯선 샐녘에 일어나니

아직 덜 밝은 창밖으로 제법 쏠쏠한 비가 내린다.

여간해선 새벽에 일어난 적이 없는데 희한한 일이지.

묵직한 빗소리에 깬 것일까?

배터지게 밀어 넣은 저녁 식사 후

에라! 모르겠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탓일까?

식도염도 심하면서 어쩌려고.

 

끈적이는 몸을 헹구고 ㅎㅎㅎ

습관대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튼다.

부지런한 아침뉴스 앵커

장맛비 제주도로 올라온단다.

머잖아 대한민국은 장마 통에 들어가겠네.

똑같은 페이스로 흘러가는 한해살이

봄 오면 들판으로 여울로 쏘다니다

적우(積雨)에 잠시 숨 죽여 은둔생활 끝나면

사서 고생인 줄 알면서도

여름휴가는 필(必) ,꼭, 반드시 가야 한다지.

그리고 곧 추석 연휴 어찌어찌 보내고

띄엄띄엄 고추잠자리 보다가 이내 닥친 겨울

다시 오겠지. 무작정 기다리는 다시 봄(春)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내 년에도 내가 반드시 봄의 초청장을 받을까?

모르는 일인데 막연한 확신은 좀 우습지.

그러니

그저 오늘 하루 할 수 있는 것은 놓치지 말아야 해.

 

소파에 앉아 재밋대가리 일도 없는 것들 끼적대다

얄팍해진 빗소리에 잽싸게 출근 준비한다.

오밤중 내린 비로

회사 지하 창고에 물은 새지 않았겠지?

이제 물 푸는 것도 지겹다.

 

2023년 6월 21일 수요일 이른 아침.

 

▶ 비를 피하고 살지는 않았다.

외려 비가 오면 달려들어 비 중심으로 들어가

그 폭우에 몸을 맡기고 히죽이며 살았다.

그리고 나이를 잡수시고ㅎ

시답지 않게 예절이라는 허울로

언제부턴가 체면치레에 신경 쓰고 산다.

언제까지 이 가면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 때가 그립다.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웃을 수 있는 철부지의 날들.

올 장마에 큰 비 내리면 슬그머니 집을 나서

그 들판에서 고즈넉이 서 있어 볼 테다.

갈아입을 옷 하나는 챙겨서 말이지.

내 인생의 과제물 들고 해갈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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