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報恩)-

 

첫 추위가 왔을 때 말이지

밖에서 떨고 있던 식물을 보았다.

그 날은 북쪽에서 바람까지 밀고 내려온 날이어서

길가의 가로수로 심은 굵은 느티나무도

추위를 숨기지 못하고 이파리를 날리던 날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 대다수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종종종 달려갔으며

둔촌시장 초입 그 호떡집에

사람들로 불티나던 날이었다.

 

그런 날이었다.

한 구석에 놓인 화분을 보았다.

아마도 1년 초(草)라 여겨

어차피 올 해 끝날 것이니 그

누구의 손길도 받지 못하던 그 화분을 보았다.

푹신거리는 롱패딩으로 보호막을 치고 다니던

그런 그림을 처음 날이었다.

 

그런 날이었다.

그 추웠던 날.

어쩌다 그 화분과 눈이 마주쳤고

측은한 마음에 집으로 가져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볕이 잘 드는 서재 창문 쪽에 밀어 넣었고

목마름과 허기졌을 식물에게 쌀뜨물을 주고

그렇게 나는 나의 일들로 분주하여 화분을 잊고 있었다.

 

어느 아침이라고 표현을 해보자

서재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다

문득 가져온 화분 생각이 들어 왔고

눈길을 돌려 보았을 때

그 길가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식물이

고마움이라도 표현하는 듯 꽃을 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사소한 것이라....

별거 아니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화분에게로 몸을 옮겨 자세히 살펴보았다.

보고

또 보았다.

다음 날도 보고

그 다음 날도 보고

이제는 꽃하고 이야기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나의 작은 호의에

꽃이 없을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위해 힘을 다해 꽃을 낸 가녀린 식물.

그래도 나는 남자인데.

이런 것들에게 관심 일도 없었는데

이제 여성 호르몬에게 잡혀 먹히는 것일까?

내게 이렇게 생긴 감정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12월27일.

녀석은 언제까지 내게 꽃을 보여주려나?

지금 글을 쓰면서

내게 은혜를 갚은 식물에게

이 흐뭇한 마음을 어찌 표현을 할까나 궁리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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